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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예술☆/[영화]감상하기

블랙스완 최고의 영화, 나탈리 포드만 최고의 배우

by 메칸더방구뿡 2011. 2. 28.

 














블랙스완 최고의 영화,
나탈리 포드만 최고의 배우


이 시대 최고의 여배우 나탈리 포드만 , 그녀와 좋은 작품이 만나 관객들의 피를 끓게 하는 영화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블랙스완. 당분간 이 영화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 같습니다. 너무나 광대하고 모두가 다를 것 같은 인간, 하지만 쉽게 밑바닥을 드러내며 다 똑같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는 것도 인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한명의 인생을 보며, 한명의 고뇌와 고통을 들으며 받아들입니다. 감히 이 작품을 현대판 셰익스피어극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 부분을 무서울 정도로 치열하게 파고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포성이 굉장히 강합니다. -_-)
1.Story를 따라 보는 영화

영화를 보는 시점의 시작

 블랙스완 이 영화를 보는 방향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영화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자 많은 사람들이 단점으로 말하는 것은 바로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니나'(나탈리 포드만)의 불분명하고 답답한 이야기 전개와 흐름입니다. 한 마디로 정확한 답을 내려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블랙스완은 그 어떤 객관식보다도 정확한 주관식답이 존재합니다.
 영화는 '니나'의 정신질환으로 시작되는 병적인 영화인가!? 이렇게 시작을 하게 된다면 영화는 모든 것이 너무나 쉽게 풀립니다. 하지만 쉬운만큼 영화의 힘은 단 몇%도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영화가 말하는 이 작품 본질의 시작은 성욕도 아닌 한 어린 아이의 성장기도 아닙니다.

 발레에 모든것을 걸고 완벽해지고 싶어하는 니나, 자신이 원하고 꿈꾸는 한 가지를 위해서 완벽해지고 싶어 하지만 인간 사회 어디든 존해하는 경쟁이라는 무섭지만 잔인한 현실이 그녀를 압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더욱더 철저한 혼자가 되어 외로운 싸움을 합니다. '백조의 호수' 작품에서 백조와 흑조의 양면성을 연기해야 하는 역을 니나는 맡게 됩니다. 소녀에 불과한 '니나'는 테크닉적으로는 훌륭하고 자신의 삶과 같이 깨끗하고 소녀같은 백조 연기는 완벽하게 소화를 합니다. 하지만 아직 성적인 매력이 존재하지 않는 그녀에게 흑조의 연기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인형으로 가득찬 방안에서 엄마가 틀어주는 발레 상자의 동화 같은 소리에 잠이드는 그녀에게는 남자를 유혹하고 어필 할만한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들어온 '릴리'는 테크닉적으로는 니나보다 부족하지만 성적인 매력과 남자와의 육체적, 감정적인 느낌들을 즐깁니다. 니나는 그런 '릴리'를 보며 자신안에 숨어 있는 또다른 자신과 만나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양면성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자신을 방해하는 일, 사람 혹은 모든 것을 걸었는데도 자신을 뛰어 넘는 사람을 만났을때 인간은 무서운 상상과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완벽해지고 싶기에 나와의 끝없는 싸움을 하지만 그 외에 또 다른 방법의 잡생각이 나를 괴롭힙니다. 그것은 아주 잠깐의 사소한 생각일 수도 있고 매우 끔찍한 상상일수도 있습니다. 이 경험은 치열한 경쟁을 하며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간절하고 미칠 것 같은 감정을 안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볼만한 아주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감정입니다. 바로! 이 영화는 나만 알 것 같고 난 아니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내안의 데미안과의 대화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런 선과악이라는 양면성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백조와 흑조는 서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니나는 릴리를 보며 자신의 어느 한구석에서 그녀의 섹스어필능력을 바라보고 가지고 싶어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지금은 늙어버리고 은퇴를 하게 되었지만 전에 아주 유명하고 본능적이였던 발레리나 '베스'의 물건을 훔칩니다. 그것은 그녀를 닮고 따라하기 위한 그녀의 또 다른 방법과 수단이였습니다. 하지만 '베스'는 교통사를 당하며 다시는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됩니다. 니나는 그런 그녀를 찾아갑니다. 거기서 그 아름답고 인정받던 베스의 모습은 없고 모든것을 잃고 퇴물이 되어버린 '베스'를 발견하게 됩니다. 니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의 끝을 본것처럼 놀라 두려워하며 병원을 빠져나갑니다.

진화가 아닌 변화

 니나는 자신의 다른 내면과 점점더 가까이 자주 만나게 됩니다.. 거기에 자신이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릴리, 발레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을 가지면서 꿈을 포기한 엄마에게서도 그들의 어두운 내면을 만나게 됩니다. 이는 그녀가 바로보는 시선과 생각이 바뀌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지듯 하나하나 더 크게 그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 방의 모든 인형을 버리고 어머니로부터 벗어나려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점점 변화하고 싶어합니다. 더이상 소녀가 아닌 여자로 말입니다.

백조와 흑조

 그런 니나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니나가 언제까지나 소녀이기를 바라며 그녀의 공연날 공연을 취소해버립니다. 어머니이지만 그녀 역시 니나와 같은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보상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런 그녀는 니나를 언제까지나 어린 아기로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니나가 순수하고 어린 백조에서 흑조의 여자로 변화하려고 하는 것을 어머니는 막아내고 있습니다. 이는 어머니 역시 또 다른 자아와 싸우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비춰져보입니다.

 드디어 공연, 공연장에 들어가 간신히 공연에 오르게 된 니나. 그녀는 자신이 믿고 있던 백조 연기에서 실수를 해버립니다. 그녀는 자신의 실수로 인한 절정의 절망감과 모든것이 무너져 내려버리는 감정을 안고 분장실로 들어옵니다. 자신의 분장대에서 분장을 하며 자신이 흑조의 연기를 하는걸 생각해보자는 릴리의 말을 듣고 니나는 모든것이 폭팔하며 릴리의 배를 찔러 죽입니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희열이 몸속에 들어오며 그 상태로 흑조의 연기를 하러 나갑니다. 자신의 욕구와 참고있던 폭탄이 터지듯 그녀는 흑조의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냅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백조연기가 어떻든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오직 지금 앞에 있는 완벽한 흑조에 빠져 황홀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너무나 환상적이였습니다. 무대 조명과 음악 그리고 영화적인 카메라, 편집, 분장등이 정말 미치게 만들더군요)


 흑조 연기를 완벽하게 마치고 단장에게 달려가 키스를 하는 니나의 모습은 더이상 소녀의 모습이 아닌 누구든 그녀를 알아볼 수 있는 존재감 있는 매력적이고 당당한 여자로서의 자신감을 발견한 모습이였습니다.
백조연기를 다시 하기 위해 분장실로 돌아온 니나, 그때 분장실을 찾는 한사람. 바로 릴리 였습니다. 바로 자신이 찔러 죽인 것은 또 다른 자신이였습니다. 피로 점점 물들어가는 니나의 배. 그녀는 마지막 백조의 모습을 간직하고 무대로 오릅니다. 거기서 백조의 모습처럼 상처받은 모습으로 단상에서 뛰어내립니다. 그리고 그녀는 점점 피로 물들어 가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은 마치 첫경험을 끝낸 후 피로 물들어가는 소녀의 모습처럼 비춰져 보입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허탈해 하는 니나는 자신은 완벽했다고 말을 하며 끝을 냅니다.



2. 니나, 그녀로 보는 예술
 
 니나가 집착하는 백조와 흑조의 이미지는 어느 누구에나 존재하지만 어느 누구나 감히 흉내낼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이 본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많은 예술가와 배우들이 무너지고 사라져간다. 인간을 향하는 직업인 예술에서 인간의 흑과백의 이미지는 반듯이 갖춰져 있어야할 자질인 것이다. 예술가의 삶을 살지만 정작 니나 자신은 백조의 단면적인 모습으로만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과연 위험한 일이 될수 있는가? 그녀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발레와 역에 집착하는 것일까 관객들을 만나는 일? 무대에 서는 것? 자신이 인정받는 것? 화려한 삶? 돈? 이 영화안에서는 이답을 찾을 수는 없다.
 

 어느 순간 니나는 자신도 모르게 발레와 무대 자체의 사랑과 행복보다 그냥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완벽해 지려고 노력한다. 무엇때문에 자신이 존재하는지 잃어버리고 있는 무감각한 실력있는 발레리나. 이것이 니나를 따라다니는 부가적인 설명이 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가져야 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엇인가를 알아차렸을때 아차!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연습과 노력으로만 될 수 없는 것이다. 거기서 부터는 자신의 삶과 또 다른 자신들과의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는 마치 아름답고 예쁘게만 생각하는 예술이라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술역시 백조의 모습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흑조의 모습으로 니나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어가며 유혹하고 그녀를 이끈다. 다른말로 이는 예술이 바로 현실이고 현실이 예술이라는 것이다. 니나 그녀로 바라보는 예술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꿈이 아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순수함을 깨트리고 또 다른 나를 불러일으키는 현실인 것이다.


3. 단장과 릴리로 보는 사회

 권력과 성의 대표적인 인물로 나오는 단장과 릴리. 그들은 작은 사회에서 아주 큰 영향력으로 작용한다. 이는 권력과 성적인것, 즉 남성과 여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인간사회의 상징적 의미이다. 이 둘의 관계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남자는 권력을 가지고 싶어하며 권력을 가진자는 여자에게 어필하기를 원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이는 지극히 본능적이고 동물적이다. 이것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인간에게 당연한거다. 하지만 정말 이 당연한 이치가 모두에게 통하는 것일까. 니나를 변하게 하는 것은 그녀를 더 솔직하게 만드는 당연한 수단이였을까. 물론 변화하는 것은 그녀의 선택이였다. 하지만 단장과 릴리. 권력과 섹스의 소용돌이안에서 그녀가 버틸수 있는 자리를 찾는것은 더 바보같은 짓이였다. 이는 너무나 큰 힘이고 사회는 이를 당연한거라고 몰아 세우고 있다. 거기에 점점 변화하는 니나, 그녀를 변화하게 하는 그들은 지금 나와 내 주위를 둘러보게 만든다.




4. 엄마와 베스로 보는 자아

 발레리나로서의 꿈이 있었던 두사람, 니나의 엄마와 베스. 그 둘은 이 영화에서 꿈꾸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마지막 지점을 향해 있다. 불행한 삶이 인간의 마지막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엄마와 베스는 불행해 보인다. 엄마는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또다른 자아를 막아내고 있고 베스는 교통사고로 자신을 죽이려하며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죽이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 들이기를 거부하는 자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구나 죽어가고 있지만 마치 영원히 살것처럼 살아가며 시간을 쓰는 인간들 처럼 말이다.


 그들이 불행해진 것은 바로 꿈이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고 갈망하는 그 꿈이 있기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무너져버렸다. 그들은 그 어떤때보다 용감하고 훌륭했던 시간들을 그리워하며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금 처절한 현실을 더 보이게 하는 수단이 되는 순간, 그들의 자아는 점점 엉망이 되어갔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막아내는데 한계가 있다. 그런 자아의 고통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이 영화에서는 엄마와 베스다. 그둘의 모습은 우리가 경험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5. 마치며

  어떤 영화든 느끼는 바는 보는 이마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보는 시각도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블랙스완 이영화는 처음에도 말했듯이 오히려 답을 말하는 영화보다 정확한 곳을 향해 바라보고 있다. 다른 영화보다 우리가 바라보고 느끼는 바가 비슷한 곳을 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영화다. 마치 우리는 알지만 부정하고 있는 부분을 적나라게 말해주는 영화. 정말 환상적이고 완벽한 연기를 보여준 천상 배우 '나탈리 포드만' 과 이를 잘 이끌어 낸 완벽한 시나리오와 연출을 한 '대런 아로노프스키' 그들에게 끝없는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